‘프루스트 효과’와 예수님의 향기

rollingstone Column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현상을 뜻하는 ‘프루스트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2001년 필 라델피아에 있는 ‘모넬 화학 감각 센터’의 허츠(Herz) 박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거의 사진을 보는 동안 특정 냄새(향기)를 풍겨서 사진을 보는 동안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실험에서는 특정 냄새만 맡게 해주든지 아니면 사진만 보여주든지 둘 중 하나만 경험하게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과거의 사진만 보는 것보다, 그 사진과 함께 풍겨왔던 냄새만 맡았을 때 과거의 추억을 더 잘 느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냄새는 우리의 마음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썩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지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자신의 소설, “1984”에서 ‘하류 계급의 냄새’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그는 인종적 혐오감이나 종교적 적개심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지만, 입냄새가 지독한 사람에겐 당췌 호감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상류층(부르주아 계급)이 하류 계급 사람들을 게으르고 상스럽고 거짓말쟁이라 믿고 자란다 해도 딱히 문제될 게 없지만, 그들이 ‘더러운 냄새 나는 존재’라 믿고 자라는 건 치명적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냄새로 말미암아 생긴 이미지가 계급에 대한 혐오감을 뼛속 깊숙이 심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서머싯 모엄 (William Somerset Maugham) 역시 ‘신분이나 재력, 교육 수준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계급을 나누는 것은 아침 목욕 여부’라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 보트 피플이 미국에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받는 정착민 교육 중에 목욕을 통해 불쾌 한 냄새를 지우는 법, 음식을 할 때 냄새 피우지 않는 법이 들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비단 유색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 때, 유럽에선 독일인이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냄새 나는 인종들’이라는 악명을 얻은 적이 있다고 하니까요.
좀 씁쓸한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타국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도 냄새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백인들이 옆집에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말하길, ‘옆 중국인 집 에서 고양이를 끓여 먹는 냄새가 나요.’ 라든가, ‘옆집에 사는 인도사람 음식 냄새를 견딜 수 없어요.’ 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리곤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자기를 피하더라는 이야기는 흔히 들어보았던 내용입니다. 물론, 이런 일을 직접 당해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약한 된장찌개 냄새가, 치즈 외엔 음식을 썩혀(발효시켜) 먹지 않는 백인들에겐 시체 썩는 냄새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구수한 냄새,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라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신약 성경에서 크리스천을 예수님의 향기라고 비유한 점도 참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장 15-16절)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새가 향기냐, 악취냐를 가리는 기준은 바로 된장찌개의 풍미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여부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기쁨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것이 더없이 향기로운 분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부담스러운 짐같은 윤리 교과서이거나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된장찌개라면 찌개 끓는 냄새를 맡으면서 내 신앙생활의 향기도 이와 같은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를 맡는 동안 ‘프루스트 효과’ 즉, 신앙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