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곰덫에 대한 단상(斷想)

rollingstone Column

캐나다 인디언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오는 ‘곰 사냥법’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아주 원시적이긴 하지만, 제대로 먹히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커다란 돌덩어리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꿀을 바르고, 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이걸로 곰 사냥 준비 끝! 꿀 냄새를 맡고 온 곰은 그 달콤한 먹이를 핥기 위해 돌덩이를 움켜 잡으려고 합니다. 그 바람에 돌덩이가 시계추처럼 뒤로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곰을 때립니다. 곰은 화가 나서 더욱 세게 돌을 밀칩니다.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되돌아와 곰을 후려칩니다. 이러기를 몇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곰은 나가 떨어집니다.
이 짧은 글을 읽고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이 덫에 걸리지 않고 꿀을 먹을 수는 없을까?’ 그리는 잠시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보았습니다. 곰의 관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맛있는 꿀을 먹어야겠다!’ 라는 것과 ‘저 놈(돌덩이)이 나를 때렸겠다? 그렇다면 본 때를 보여주마!’ 라는 것입니다.
식욕이라는 욕구와 분노라는 감정에 본능적으로 충실히 반응하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하지 못합니다. ‘때리고 맞는 이 악순환을 중단하고 꿀을 먹을 순 없을까?’라고 생각할 줄 모릅니다. 식욕을 채우려는 본능에만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 얻어맞게 되고 분노는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때리는 돌이(정확히 말하면, 돌에 묻은 꿀이겠죠) 원래는 자기가 가지려고 했던 목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엔 욕심이 자기를 때린 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만약, 곰이 바위 때리기를 중단하면 바위도 반동으로 자기를 때리는 시계추 운동을 멈출 것입니다. 잠시만이라도 화내기를 멈추고 쉰다면, 곰은 어쩌면 그 돌덩어리가 밧줄에 매달려 있을 뿐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곰이 할 일은 돌을 밀치는 것이 아니라, 돌을 묶고 있는 밧줄을 이빨로 자르는 것 뿐입니다. 그리면, 돌에 묻은 달콤한 꿀을 핥게 될 것이구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양자처럼 소중히 여기는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쓰는 편지에서, 욕심(식욕)으로 인해 덫에 걸린 곰처럼 스스로의 욕심에 괴로워하는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6장10절)

이 말씀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욕심은 아직 나의 손에 쥐어 지지 않은 부(富)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더 가진 이들과 나를 비교하게 만듭니다. 근심을 낳습니다. 기억해야 할 사실은, 물질(돈)은 도구일 뿐이지 추구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움켜쥐려 하다간,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 덫에 매달린 돌덩이처럼 밀려갔다가는 다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가슴팍을 후려칠 것입니다.
그대신, 밧줄을 끊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기보단, “어떤 일”을 위해서 돈을 벌 것인가를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즉, 물질보다는 그 물질을 가지고 이루려고 하는 가치를 먼저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 사양의 최신 컴퓨터를 갖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이 진리를 모르면 꿀을 먹고 싶은 본능에만 집착하는 곰과 다를 바 없습니다.
꿀이냐, 밧줄이냐?
오늘도 앞에 놓인 수많은 곰덫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